가운데 너는 누구냐
캡콤의 명작 바이오하자드(이하 바하) 시리즈의 신작이 내년 초 출시 예정이다. 바하 1편을 시작으로 시리즈는 무려 20년이나 이어져 왔다. 그동안 매 시리즈마다 바하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는데, 이번 7편의 변화는 이전 시리즈에서의 변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장르가 바뀔 태세다. 초창기 바하 팬으로서 이번 신작에 대해서는 기대와 걱정이 모두 들고 있는데, 그 동안 공개된 내용만을 놓고 볼 때는 아쉽게도 걱정이 더 앞서고 있다.
바이오하자드 1 - 여기에서 깜놀하지 않은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바하7의 제작진이 그동안 일관되게 알린 문구는 ‘공포로의 회귀’였다. 아마 4~6편부터 바하 시리즈를 접한 뒷세대 팬들이라면 “바하 시리즈는 대놓고 좀비 무쌍 게임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바하 1편부터 즐겨온 구세대 게이머들이라면 알겠지만, 바하 1편은 공포 어드벤처에 더 가까웠다. 처음으로 좀비와 마주칠 때의 카메라 연출, 갑작스레 등장하여 수많은 게이머를 놀래킨 좀비견, 그리고 좁은 공간을 날아다니던 까마귀 떼와 각종 함정까지, 바하 1편은 시대를 풍미한 몇 안 되는 명작 공포 게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늘 그렇듯이 한 번 경험한 공포는 점점 익숙해지고 계속 저하될 수 밖에 없다. 강력한 무기와 탄환을 얻어갈수록, 그리고 한 회차를 끝낼수록, 점점 액션 게임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는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면마다 고정된 시점과 다소 불편한 캐릭터 조작,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어쩐지 B급 감성 충만한 연출로 인해 적어도 1회차에서 만큼은 충분히 긴장과 공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비록 퇴색되기는 했지만 3편까지는 그럭저럭 이어지다가, 4편에서 드디어 본격 액션 김레온의 좀비 무쌍으로 변화하게 된다.
바이오하자드 4 - 아, 로켓런처!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많은 클래식 팬들이 변화된 4편을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바하의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3편까지 이어져 오던 시리즈의 공포 코드는 이미 다수의 팬들에게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사실 3편까지 바하는 그렇게 크게 바뀌거나 개선되지도 않았다. 바하 시리즈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했고 그렇게 결정된 변화 노선은 본격 액션 게임이었다. 어차피 공포가 먹히지 않는다면 액션이라도 화끈하게 가자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였다.
그 결과는 새로운 팬층의 유입으로 증명되었다. 판매량이 늘어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국내 팬들도 바하 4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바하 1~3편은 플레이스테이션 (PS1) 타이틀로 출시되었는데, 이 때 당시 국내에서는 PS1이 판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클래식 팬들은 대부분 일본 내수 기기를 어렵게 구해 즐기던 소수의 게임 매니아들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바하 4편이 닌텐도의 게임큐브로 출시되었다. 아마 큐브 독점 타이틀이었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곧이어 PS2로도 출시가 되었고, 이 때는 국내에서 PS2도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어서, 바하 4는 이전작들과 달리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PC로도 출시되면서, 수많은 어둠의 능력자들에게 마개조(?)를 당하면서, 더욱 많은 팬을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때부터 바하는 액션 위주로 게임이 흘러가게 되어, 아쉽지만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후속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리즈의 방향성이 바뀌어 후속작들이 나오고 세월도 흐르고 바하 시리즈도 잊혀질 때쯤 마침내 7편에 대한 소식이 하나 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하 7편의 영상과 데모가 공개되고 제작진도 7편에 대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제작진들은 의외로 ‘공포로의 회귀’를 들고 나타났다.
최근까지 공개된 바하 7에서, 바하의 느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데모 버전을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거 정말 바하 맞나?’였다. 물론 바하7이 바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1인칭으로 변화된 시점, (데모 버전이라 그렇겠지만) 총기나 무기없이 도망만 다니는 무기력한 플레이어를 보면서 이전 시리즈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라는 느낌이었다. 시리즈 전반에 등장하던 좀비나 생물병기는 전혀 볼 수 없었고, 웬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흔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되는 최신 시리즈가 이전작과의 연결 고리는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과, 흔한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는 건 불안한 부분이었다.
바이오하자드 7 데모 - 극강의 그래픽
반면 제작진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새로운 게임 엔진으로 인해, 게임의 그래픽은 크게 발전했고, 디테일은 훌륭했으며, 나름 신경 쓴듯한 분위기 묘사는 상당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흔하디 흔한 것일지라도) 영화와 같은 분위기와 연출은 1인칭 시점과 맞물려 매우 잘 어울렸다. 특히 비디오 테이프 연출은 어느 정도 기대감도 들게 했다. 게임 안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면 그 비디오가 녹화되던 과거로 돌아가 진행하고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 영향을 준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은 시도였다.
바이오하자드 7 데모 - 철조망과 지저분한 저택... 뭐? 이건 사일런트 힐이잖아!
그러나 게임의 전반적인 느낌은 많은 이들이 말하듯 최근의 공포 게임인 암네시아, 사일런트 힐,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아웃라스트를 따라가는 듯 했다. 무기력한 플레이어, 적들로부터의 숨기와 탈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퍼즐 풀기, 비밀의 발견… 이것들은 이미 다른 게임에서 익숙하게 접해왔던 것들이다. 바하 7에서 과연 이 정도의 변화가 기존 바하 팬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팬층을 형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새롭고 혁신적인 시스템이나 게임성 같은 것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전 시리즈의 인기 요소였던 동료 시스템이나 코옵 모드도 제외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포로의 회귀’가 올바른 방향일지는 의문이 든다. 공포라는 장르의 특성상 한계는 명확하다. 1회차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바하 7이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출시가 되지 않고, 겨우 데모 버전에서 보여진 수준으로 정식 출시가 된다면… 그 때도 바하 팬들은 여전히 바하의 팬이 될 수 있을까? 공포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1편으로의 회귀’라는 문구를 걸고 개발을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바하 1편은 최근작들과 달리 공포 어드벤처에 가까운 게임이었고, 바하 1편의 컨셉, 배경으로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공포만을 강요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실망이 조금 더 클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그런 게임들은 충분히 있으니까 말이다.
바이오하자드 20주년 - 바하 1편을 즐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 전이라고? 앗, 그럼 내 나이가... 'o';
그렇지만 바하 시리즈가 변화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4~6편에서 보여준 액션은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진부해진 부분이 있고, 이제는 보다 새롭고 참신한 것이 등장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바하 시리즈를 탄생시킨 캡콤이 비록 우려먹기의 대표 주자로 악명이 높지만, 새로운 우려먹기 시리즈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실험을 하는 제작사인 것을 팬들은 잘 알고 있다. 바하 시리즈가 이어져 온지 벌써 20년 째이고, 시리즈의 스토리도 시스템도 새로울 것 없이 바닥이 나 있는 상태에서 최근작들은 이전작들에 비해 판매량도 떨어지는 분위기다. 바하 7이 위기에 몰려있는 시리즈의 부활을 이끌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무덤에 끌고 들어갈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든 더 새롭고 혁신적인 내용이 들어가고 그에 따른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져야만 바하 시리즈가 부활할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제작진의 고민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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