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스페이스를 만난 때가 아마도 PC를 새로 구입했었던 2년 전 쯤이다. 그래픽 카드를 나름 최신으로 바꿨으니 새로 구입한 PC가 얼마나 성능이 나오는지도 궁금해서 신작 게임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접한 것이 바로 데드 스페이스였다. 이 게임을 먼저 접했던 유저들이 극찬을 하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해봤다가… 충격과 공포를 경험했다. 한 마디로, 연출력 끝판왕인 본격 호러 SF 게임이라고 할까.


배경이 우주의 어느 한 공간이었고 시대 배경이 먼 미래인, 고만고만한 SF 게임인 줄 알았는데… 영화나 게임을 통틀어, 여지껏 경험했던 호러 물에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것은 그냥 공포 그 자체였다. 어쩐지 게임 실행 후 처음 나오는 배경 음악도 무지하게 음산했다. 동요로 익숙한 '반짝 반짝 작은 별' 노래가 이토록 무서울 수 있을까. 마치 제 정신이 아닌듯한 여성의 나즈막한 노래 가락이 우주 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배경음은, 들을수록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게임을 접한 처음엔 그 노래가 나오는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좀 음산하다 싶은 정도였다. 플레이 타임이 아주 긴 편은 아니지만 한 번에 엔딩까지 쉽게 볼 수 있지는 않기 때문에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진행하다 보니 타이틀의 배경음을 자주 들을 수 밖에 없고, 들을수록 공포가 더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데드 스페이스의 공포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괴물

첫 번째는 뭐니뭐니해도 사실적인 그래픽과 움직임이 잘 조합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괴물들은 죽은 시체에서 생기기도 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괴물로 변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괴물들은 당연히 툭 튀어나와 기습도 하고, 닥돌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공격해 온다. 2회차에서는 패턴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싱겁겠지만, 1회차에서 괴물의 공포는 단연코 압도적이다.


게다가 괴물들은 잘 죽지도 않는다. 각 괴물은 모두 약점을 갖고 있는데, 이 약점 부위가 모두 다르고 약점이 아닌 곳을 쏘면 데미지가 거의 없다. FPS나 TPS 장르의 게임에서는 보통 적의 머리를 노리는 헤드샷을 하기 마련인데,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이 게임의 괴물들은 머리가 약점이 아니라 팔다리 또는 촉수, 몸의 특정 부위이다. 따라서 헤드샷이 아니라 사지절단을 하게 되는데, 괴물의 다리를 잘라 이동성을 저하시킬지 아니면 팔이나 촉수를 잘라 공격력을 떨어뜨릴지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공격해야 한다. 어물쩡 거리다가는 큰 데미지를 입거나 붙들리게 되는데 당황하다 바로 주인공의 사망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주인공의 사망 장면이 상황이나 괴물에 따라 모두 다르다!)


적들의 시체를 훼손시킬 수 있는 몇 몇 게임(솔저 오브 포춘 같은)이 있긴 한데, 데드 스페이스처럼 세밀하게 절단이 되는 게임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일정 수준 이상은 절단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팔다리가 다 잘린 몸통을 두 조각으로 더 자를 수는 없다.



사운드

두 번째는 단연코 사운드라고 하겠다. 첫 번째가 되지 못한 이유는, 그래픽이 허접하면 사운드가 아무리 좋아도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데드 스페이스는 장르 특성상, 배경음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사실 배경음이 있는데 기억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포에 떨기 바빠서 -_-) 대신 효과음은 엄청난데, 괴물이 나타날 때나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현악기와 금속성의 시끄러운 울림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괴물의 으르렁거림, 생존자들의 처절한 음성, 통신으로 흘러나오는 긴박한 메시지 등… 공포 영화의 향연 그 자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이, 무중력 공간과 텅 빈 우주 공간으로 진입할 때 주인공의 숨소리 외엔 모든 사운드가 사라지고 몽롱한 효과음만이 난다는 것이다. 우주복 안에 갇혀 있고 산소는 떨어지고, 압박감과 공포감이 말 그대로 장난 아니다.

실시간 진행

또 다른 요소는 게임 진행이 완전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게임 내의 상점을 이용할 때나, 현재 나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때, 특정 물체를 움직인다거나, 자동으로 진행되는 이벤트 장면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 쪽에서는 긴장감을 더 주기 위해 무기의 탄약량이나 체력 바를 화면 한 공간에 따로 배치하지 않고, 게임 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데 (체력 바는 입고 있는 복장의 척추 부분에 표시되고, 탄약은 각 무기의 홀로그램에 표시된다.) 이 부분은 적응하기 나름이고 게임을 진행하던 당시의 나에겐 크게 와닿진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인벤토리 제한

인벤토리의 압박도 한 가지 요소가 될 듯 싶다.
이런 게임은 나름 현실성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장비나 탄환, 심지어는 돈까지 부피를 가진 아이템으로 취급되고, 수납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공간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몇 칸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항상 공간 부족에 허덕이고 상점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심적 부담감도 공포에 한 몫 하는 것 같다.


등장 인물

어째서인지 이 게임에서는 멀쩡한 인간이 한 명도 없다.
게임 내의 등장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부상을 입고 나타나는데,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거나 완전히 미쳐 있고, 심지어는 자살(!)도 한다.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공격해 오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게임 분위기나 스토리에 맞게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대사 같은 부분이 매우 잘 짜여 있다.

그래픽과 최적화

그래픽은 별로 논할 거리는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게임 좀 해봤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크라이시스의 그래픽을 최고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크라이시스는 그래픽만을 추구한 나머지 성능을 잃어버렸다. 출시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게이머가 크라이시스의 고품질 그래픽을 감상하면서도 부드럽게 즐겼을지 의문이다. 당시 최고 사양 PC에서도 끊긴다고 할 정도였으니… 내 PC가 20 프레임도 뽑아주질 못해 그 당시에는 정상적인 진행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FPS나 TPS의 장르에서는 프레임이 게임 플레이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데드 스페이스는 그래픽과 최적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그래픽은 아니지만 괴물의 디자인이나 피부나 각종 물체의 질감, 벽면의 SF스러움 등 나름 실제감을 잘 표현했고, 무엇보다 최적화가 뛰어난 편이다. 출시 당시 약간 저사양 PC에서 플레이를 해보니 30 프레임 이상 나와줘 끊기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로딩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철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표시해주는 스크린 장면을 보여주는 동안에 다음 맵을 로딩하는 것은 굿 아이디어였다.) 이런 장르의 게임은 특성상 로딩이 생기거나 프레임이 끊기는 경우가 자주 생길수록 공포감이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제작진이 매우 신경을 썼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맵 디자인도 매우 잘 되어 있다. 특히 좁은 공간이나 작은 연구실의 실제감, 공간감이 좋은 편이다. 잠깐 경험해 볼 수 있는 무중력 장소라든지, 우주 공간의 표현(특히 사운드!)도 좋은 편이다. 제작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를 무섭게 할 수 있을지 깊게 연구한 것 같다.

빛이나 그림자 연출도 사실적으로 잘 되어 있다. 어두운 곳이 많긴 하지만, 광원을 적당히 배치해 두었다. 전기가 지직거리는 표현이나, 각종 기계 장치 사이 사이에 보이는 거대한 광선도 게임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


잔혹한 표현도 매우 사실적이다. 피가 튀는 것은 기본이고, 위에서 언급했던 괴물들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사지절단 잔혹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쏘고 썰고 밟고 터뜨리고… 이런 잔혹 요소가 한 가득이다.

한 줄 요약

공포나 고어 장르를 좋아하는 액션 매니아라면 데드 스페이스는 꼭 한 번 해봐야 할 명작이다.




이 글은 본격 리뷰가 아니라, 데드 스페이스의 공포 요소에만 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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